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을 공식적으로 들고 나왔다. 미국의 관세 압박이 거세지는 와중에, 유럽 자체적으로 제조업을 키워서 버텨보겠다는 선언이다. 뉴스를 보면서 요즘 유럽 수출 비중이 있는 종목을 관심 목록에 넣어두고 있던 터라, 이게 어디까지 영향을 줄지 좀 찾아봤다.
단순히 "유럽산을 쓰자"는 구호가 아니다. 트럼프발 관세 위협에 중동 전쟁까지 겹치면서, 유럽 경제가 이중으로 압박받는 상황에서 나온 생존 전략에 가깝다. 그리고 이건 우리나라 수출기업 입장에서도 가볍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더라.
트럼프 관세, 유럽 경제에 어떤 타격을 주나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본격적으로 올리겠다고 나서면서 유럽 제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같은 핵심 수출 품목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구조다. 유럽 입장에서 미국은 최대 수출 시장 중 하나인데, 거기에 높은 관세가 붙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특히 독일 자동차 산업이 민감하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같은 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관세가 본격화되면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건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전체 공급망에 연결된 이슈다. 독일 완성차 한 대에 프랑스·이탈리아·동유럽 부품이 들어가니까, 관세 충격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이 꺼낸 카드가 '메이드 인 유럽'이다.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대신 유럽 내부 수요를 키우겠다는 방향 전환이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 미중 무역분쟁 때 중국이 '내수 확대'로 돌아섰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중동 전쟁이 유럽 제조업을 옥죄는 방식
관세만 문제가 아니다. 중동 지역 불안정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의 에너지 수급이 다시 불안해졌다.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처를 중동과 미국 LNG 쪽으로 분산시켜왔는데, 중동마저 불안정해지니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진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제조업 원가가 올라간다. 원가가 올라가면 유럽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여기에 미국 관세까지 붙으면 이중 부담이다. 유럽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밖으로 팔기도 어렵고, 만들기도 비싸진"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마크롱의 '메이드 인 유럽'에는 에너지 자립이라는 숨은 의제도 깔려 있다.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유럽 안에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향 자체는 유럽이 진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메이드 인 유럽' 전략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
마크롱이 말하는 '메이드 인 유럽'은 단순한 국산품 애용 운동이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에너지 전환 같은 전략 산업에서 유럽의 자급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산업 정책이다.
이미 유럽은 EU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을 통해 반도체 생산 비중을 높이려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여기에 배터리 분야에서도 아시아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관세 리스크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어차피 밖에서 사오기 어려워질 거면, 우리가 만들자"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거다.
방산 분야도 주목할 만하다. NATO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GDP 대비 2%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돈이 미국산 무기 대신 유럽산 무기에 쓰이는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마크롱은 이전부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해왔고, 이번 선언도 그 연장선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꽤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본다. 미국 한 나라의 정책 변화에 이렇게까지 흔들리는 구조 자체가 유럽 입장에서는 리스크였을 테니까. 문제는 실행 속도와 실효성인데, 유럽 특유의 의사결정 속도를 생각하면 시장이 당장 반응하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봐야 할 테마다.
한국 수출기업이 신경 써야 할 부분
여기서 우리 얘기로 넘어오면, 유럽의 보호무역 강화는 한국 수출기업에 양면적인 영향을 준다. 한국은 유럽에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석유화학 제품을 주로 수출하고 있는데, 유럽이 이 분야들에서 자급률을 높이겠다고 나서면 장기적으로 시장이 좁아질 수 있다.
특히 배터리 쪽이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같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에 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을 늘려왔는데, 유럽이 자체 배터리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면 보조금이나 규제에서 차별이 생길 여지가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배터리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런 추세가 가속화될 수 있다.
반면, 유럽이 제조업을 키우려면 당장은 장비와 소재를 외부에서 가져와야 한다. 반도체 장비, 디스플레이 소재, 특수 화학제품 같은 분야에서는 오히려 단기적으로 수출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예전에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외치면서 오히려 한국산 장비 수입이 늘었던 사례가 떠오른다.
국내 증시를 보면, 코스피가 4월 4일 기준 5,377.30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당장 유럽발 보호무역 이슈가 시장을 흔들고 있지는 않지만, 유럽 매출 비중이 높은 종목들은 중장기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자동차 부품주, 2차전지 관련주가 대표적이다. 2차전지 섹터에 관심이 있다면 개별 종목의 변동성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KODEX 2차전지산업이나 TIGER 2차전지테마 ETF도 눈여겨볼 만하다.
보호무역 시대, 앞으로 지켜볼 두 가지
하나는 유럽의 '메이드 인 유럽' 정책이 구체적인 입법과 예산 배정으로 이어지는 속도다. 마크롱 혼자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 EU 차원의 합의가 필요한데, 독일·이탈리아 등 주요국의 입장이 얼마나 빨리 정리되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빠르게 움직인다면 관련 규제 변화도 앞당겨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 관세의 실제 시행 범위와 강도다.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카드로 관세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어디까지 부과되는지에 따라 유럽의 대응 강도도 달라질 것이다. 관세가 예상보다 약하게 나오면 '메이드 인 유럽'의 추진력도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강하게 나오면 유럽의 보호무역이 더 빠르게 굳어질 수 있다.
결국 '보호무역의 시대'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이 관세를 올리고, 유럽이 자급자족을 외치고,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수 중심으로 전환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입장에서는 어느 한 시장에 올인하기 어려워지는 환경인 셈이다. 이런 구간에서는 억지로 방향을 잡으려다 오히려 손해 본 경험이 있다. 큰 흐름을 읽되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